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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표명희 장편소설, 어느 날 난민

상상숲 2018. 3. 26. 21:04

표명희 장편소설, '어느 날 난민'

출처 : 교보문고 

2018.07.03 수정



 정말 운 좋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창비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먼저 접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예전에는 뉴스나 신문의 국제란에서만 나왔지만, 이제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그저 유럽의 사회 문제 중 하나이거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반대편 먼 나라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내가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지 반쯤 의심도 했다. 하지만 이제 제주도의 예멘 난민들이 SNS와 뉴스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이 소설은 다시 한 번 읽을 때는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해진다. 


 민의 생물학적 엄마이지만 누나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는 미혼모 해나가 훔친 자동차 하나에 몸을 싣고 달려온 이곳은, 이 소설의 배경인 인천 매립지. 매립지를 묘사하는 단어들을 죽 읽고 있노라면 해나와 민이 보고 있는 풍경이 내 마음속에도 그려지는 듯 하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궁금해하는 사이, 베트남에서 온 '국적은 없지만 한국인'인 또다른 난민이 등장해 얼른 다음 장을 넘기게 만든다. 


"··· 자연에 인공을 더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땅이 이 섬이었다.

 어느 누구도 살아보지 않은, 과거도 없고 뿌리도 없는 곳.

 사람으로 치자면 '근본 없는 자식'같은 땅이 이곳이었다." - 126p

 외국인 지원 캠프를 묘사하는데 이렇게 슬프고도 사실적인 말이 있을까.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던 난민들에게 새로 싹을 틔울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유령 공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곳이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인천 공항 근처의 매립지인 이곳은, 캠프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처럼 황량하고 쓸쓸한 곳이다. 사람도 없는데 높게 솟아있는 아파트들, 추적추적하게 땅을 기어다니는 해무. 과연 이 곳에서 다들 행복해질 수 있을까?


 국적도 없고 사랑도 잃어 쓸쓸함에 방황하던 캄보디아의 뚜앙, 명예 살인이라는 이슬람 문화에서 도망쳐나온 인도의 찬드라, 민족 갈등으로 중국에서 도망친 위구르족 모샤르와 한족 옥란의 가족들, 마지막으로 부족의 전통을 어겨 살해 위협을 도망친 웅가와 미셸,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인다.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쉬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어린아이인 민과 샤샤, 적극적인 커플 미셸과 웅가, 그리고 진 소장과 김 주임의 노력으로 차차 세상에 한 발짝 내딛을 준비를 한다.


 한편 캠프 밖에서는, 민의 어머니인 해나와 그녀를 돕는 허 경사의 얘기가 잠깐씩 등장한다. 해나를 묵묵하게 지원해주는 허 경사도 마음 속에 상처가 있는 '심리적 난민'인데, 이 둘이 대화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가는 모습이 자그마한 위안을 준다.




언제나 해피엔딩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난민 인정을 받을 날만을 기다리며 캠프 식구들은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꾸려나간다. 캠프는 언뜻 보기에는 평화로운 곳이지만, 시한부 마냥 자신의 운명을 선고받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고문실 같기도 하다. 허가된 자와 허가 받지 못한 자의 희비가 날카롭게 교차하는 곳. 찬드라는 난민 인정을 받고 새 희망을 찾아 캠프를 떠나지만, 이 곳에마저도 상실에 시달린 뚜앙은 송환 대기실에서 만났던 남자와 같은 선택을 하고 만다. 이 곳의 유일한 아이들인 샤샤와 민은다시 캠프로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을 보고 다시 캠프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흔히 순수한 아이들의 눈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바라보면, 그 슬픔과 아픔이 극대화된다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민과 샤샤가 완전히 '순수한' 아이들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어머니가 누나라고 믿는 채로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던 민, 정치적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왔지만 늘 싸우는 부모님과 자신을 때리는 형이 있는 샤샤. 오히려 갑자기 바뀐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고 어딘가 평범해 보이지 않은 모습들이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한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겪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행동 하나하나가 낯설고 안쓰럽게 다가왔다. 

 

 이 모든 게 어디선가 일어났던 이야기,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답답해진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난민 신청자는 9,942명이다. 2018년은 2월까지 벌써 2,479 건의 난민 신청이 있었다. 이 중 심사결정이 된 건 116건인데, 이 중 90명은 난민 불인정이다. 그나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식적' 난민으로 인정 된 사람은 7명이고 남은 19명은 아무런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인도적 체류 허가자이다.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 제정국가 치고는 초라한 숫자다. 난민 신청 원인 1위는 종교였으며, 그 다음이 정치적 사유이다. [각주:1]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수 백명의 찬드라가, 수 백명의 모샤르가 있는 것이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송환 대기실이라는 유령 공간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좋았던 점과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읽는 내내 느꼈지만, 전체적으로 시각 묘사가 뛰어나다. 풍경이 눈 앞에 하나하나 그려져 상황에 훨씬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문장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인물을 고르게 그려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허 경사에 대한 서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중 하나이다. 도대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굳이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소설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가 '심리적 난민'이라는 사실은 알고있지만, 아예 많이 드러나지 않은 온전한 조력자로 남거나 조금 더 인물의 서사가 드러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민의 누나이자 어머니인 해나라는 인물도 조금 더 일관성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인 민을 강제로 맡기고,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해나 또한 정착할 곳 없는 대한민국의 난민인데,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국적은 있지만 편하게 마음 놓고 쉴 곳 없는 점은 다른 난민들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해나의 분량은 적지만, 나에게는 제일 크게 기억에 남는 인물로 남았다. 다음에 읽을 책은 대한민국의 난민을 다루는 내용으로 찾아볼 생각이다.


 사회 집단 간의 갈등보다는, 난민으로 나오는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 시민단체와 갈등이 있는 건 앞 장에서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난민들의 삶 자체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양이 많아지더라도 인물들에 대한 얘기가 더 자세히 나왔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내게 너무 묵직하게 다가와서,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걱정이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서 그런 걸테다.


 꼭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만 난민 신청을 허용해야 하는가? 난민 신청을 받기 위해서는 겁 먹고 지친 모습만을 반드시 보여야만 하는가? 더 나아가 그들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을 읽고 떠오르는 수십 개의 질문들을 만들고 답하며, 난민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서 (추가본, 수정 예정)

 난민들의 삶에 집중하는 것 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게 먼저가 아닌가 싶다. 매번 대선 때도 느끼지만, 정확하지 않은 통계자료를 인용한 극단적인 일반화, 거짓뉴스, SNS를 통한 선동이 사람들의 눈을 가린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혐오와 배척을 만들어내고, 이는 사회의 폭력으로 이어진다. 책에 나오는 중동 난민은, 가부장제도의 피해자로서 실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한 여성이다. 최근 뉴스는 '성인' '남성' 난민에 대해 얘기하고, 사람들은 유럽과 해당 중동 국가의 사회를 소개하며 난민을 받아들이면 한국 사회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사실 우려를 넘어선 다른 것들이 더 많다)

 중동의 많은 국가들이 전쟁 중인 것도 사실이며,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있으며,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특히 성인 남성이기 때문에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맘카페와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난민들 사이의 사건 사고,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암담하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건 너무나도 쉽고 빠르다. 부풀려진 사실이 아니라, 처음부터 조작으로 정보가 시작되면 시작과 끝을 알기 어렵다. 

 두산 백과가 정의하기를, 난민은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다. 난민을 받아들이고 교화하는 건 사회 시스템의 기능이다. 

 난민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 사실을 덮고 지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지레짐작해 차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할 뿐. 그들을 교화하고, 지역 사회와, 나아가 한국 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사실 아직 내 생각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거짓 뉴스와 선동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로 인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고치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우성의 인터뷰를 읽어보았다. 그러한 내용이 나오기 위해서는 평소에 얼마나 깊은 생각과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1. 출처 : 통계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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