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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들의 눈물이 쌓인다면 - 3그램/수신지

상상숲 2018. 7. 25. 14:32

3그램 / 수신지

사진 출처 : 교보문고



 이번 달부터, 친구와 나름의 북클럽을 만들었다. 난 아니지만 친구는 워낙 바쁜 학생이기 때문에 두 달에 한 권씩,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주기로 했다. 내가 친구에게 보내준 책은 '아픔이 길이 된다면', 친구가 내게 보내준 책은 '3그램'이다. 나는 조금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을 보내줬는데, 친구는 아기자기한 그림책을 보내줘서 약간 미안해졌다. 성격 좋은 친구는, 우리 둘 다 보건쪽의 책을 읽게 되었다며 재미있어했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아무것도 접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이 책이 그림책인지도 펼쳐보고나서야 알았다. 표지에서 모자를 쓰고 울고 있는 여자의 그림을 봤을 때, 막연히 암에 대한 투병기겠거니 생각했다. 다리 수술을 받고 회복한지 얼마 안 된 때라서 진단에서 수술, 입원에서 퇴원까지의 삶을 다룬 책을 보내준 친구의 배려에 고마웠다.


 신체의 질병은 예상치도 못했던 시점에 찾아온다. 마치 드라마처럼. 내가 겪었던 불편함의 무게가 불안의 강도로 치환되고, 이 불안이 현실이 될 때 이미 망가져있던 몸과 함께 정신도 함께 무너진다.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은 작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매번 무릎을 다쳐서 병원에 갔을 때, 늘 같은 진단을 하고 나면 하는 말이 인대가 늘어났다는 말이었다. 그냥 전에 크게 다쳐서 약해졌나 싶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계단을 갑자기 내려갈 때마다 힘이 풀렸고, 다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고, 무릎 뒤쪽에서는 뚝뚝 소리가 났다. 한 번은 다리를 일자로 쭉 펴서 뻗고 자기도 힘들었다. 설마라는 생각에 병원을 갔다. 의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MRI를 권했고, 그제서야 난 후방 십자인대를 다친게 아니라 전방 십자인대를 다쳤고, 그 인대조차 끊어져서 얼마 안 남아있는 수준이고, 증상이 오래 되어서 연골판을 아예 들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엄마 아빠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수술비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앞으로 난 내가 하고 싶은 운동들은 못 하겠지? 왜 난 좀 더 일찍 병원에 가지 않았지?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거지? 내가 그 때 체육대회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켰다. 누구한테 전화 할 생각도 못하고 그렇게 돌아가는 버스에서 혼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겁과 불안이 일분일초 나를 좀먹었다. 무서웠고.... 무서웠다.


 내가 입원한 기간은 딱 5일이었다. 수술 전날, 수술 당일날, 주말 껴서 이틀, 그리고 월요일에 퇴원. 수술은 대공사였지만 성공적이었다고 말씀해주셔서 가족들 모두 마음을 놓았다. 진통제 부작용 때문에 힘들었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의 걱정 덕분인지 일찍 집에 돌아와서는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나만해도 이렇게 힘들고 불안했는데, 글쓴이는 어땠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혼자서 오도카니 앉아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고, 마취 동의서를 작성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 걱정을 하면서, 엄마도 내 걱정을 했던 시간과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작가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잘 견뎌내고 이겨내줘서 내가 다 고마웠다. 


 자신의 얘기를 조용하게 풀어나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내가 힘들었던 일일수록, 시간의 시작과 끝을 조리있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는 동글동글한 그림으로 진단과 입원을, 그리고 입원하면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 혼자 있을 때 느꼈던 불안과 외로움을 감성적으로 표현했다. 어떨 때는 재치있는 표정으로, 어떨 때는 풍경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얘기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 작가의 캐릭터가 흘린 눈물에 녹아든 느낌이었다. 


 여담으로, 정형외과 병동 분위기는 밝은 편이라고들 얘기한다. 수술의 예후가 비교적 좋은 편이라서, 나이 드신 분들이 수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재활치료를 받고 나서 어떤 생활을 할 지 계획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큰 곳이라고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나 또한 그랬다. 내 의지대로 못 움직이는 시간이 다소 길어서 우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잘 될거야'라는 생각이 더 크다. 암 수술을 받은 사람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 병동은 어떤 분위기였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난소암의 일반적인 무게는 3그램이라고 하지만, 난소암을 진단받은 환자들과 가족들이 흘린 눈물의 무게는 그보다 더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눈물로 내일이라는 싹을 틔워낸 작가님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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